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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里郎之梦——记朝鲜族移民历史纪录片的诞生
2016-02-22 02:28 作者:金向德 来源:《中国民族》朝鲜文版

1.2015年8月,历时两年拍摄完成的纪录片《阿里郎之梦》成功登陆中央电视台一套《中华民族》节目,改编成五集纪录片播放,真实再现了朝鲜族的移民历史,反映了朝鲜民族不屈不挠、坚忍不拔的民族精神。.jpg

20158月,历时两年拍摄完成的纪录片《阿里郎之梦》成功登陆中央电视台一套《中华民族》节目,改编成五集纪录片播放,真实再现了朝鲜族的移民历史,反映了朝鲜民族不屈不挠、坚忍不拔的民族精神。


2.申顺浩和徐江淑二位老人是朝鲜族移民历史的亲历者。.jpg

清朝康熙十六年,清政府将长白山、鸭绿江、图们江沿岸一千余华里的土地视作龙心之地,并实行了封禁政策。同时,清政府也要求朝鲜政府实行封禁政策。于是当时朝鲜政府定期派朝鲜军队巡逻图们江鸭绿江一带,如果发现有人渡江潜入江北那就全部杀头。可是这样的政策影响了当地百姓的生活,尤其一场旱灾饿死了很多百姓。为了生存,大家不得不想办法冒险渡江耕种。(《阿里郎之梦》第一集泪洒图们江)。   图为申顺浩和徐江淑,二位老人是朝鲜族移民历史的亲历者


纪录片《阿里郎之梦》将历史与现实、纪实与艺术相结合,是反映朝鲜族移民历史的一部具有较高史料价值和教育意义的电视纪录片。《阿里郎之梦》如实再现了朝鲜族跨过图们江、鸭绿江迁徙到中国,并以不屈不挠的精神逐步从移民转变为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光辉历程。


本刊记者跟随中央人民广播电台纪录片《阿里郎之梦》摄制组一行,赴吉林延边、辽宁抚顺等地采访了纪录片的拍摄过程。记者历经半个月的时间,与摄制组一行同吃同住同劳动,深入一线切实感受整个拍摄过程中遇到的艰辛与坎坷,如实记录了他们的感人故事。


2015年5月,在该纪录片制作完成之际,《中国民族》杂志朝鲜文版及时刊登了相关采访报道。此稿在本刊刊登后,社会反响强烈。黑龙江朝鲜文报、吉林朝鲜文报、辽宁朝鲜文报、延边日报、潮歌网等多家媒体纷纷跟进报道该纪录片。2015年8月,纪录片《阿里郎之梦》成功登陆中央电视台一套《中华民族》节目,改编成五集纪录片播放,受到观众欢迎。


6.2014年4月,摄制组一行来到辽宁省新宾满族自治县实地取景,并回顾在此地区的抗日斗争事迹。.JPG

2014年4月,摄制组一行(右一为制片人朴日善)来到辽宁省新宾满族自治县实地取景,并回顾在此地区的抗日斗争事迹。


7.民间历史学者全正革先生在讲述朝鲜族反日七志士的故事.JPG

在“十月革命”的影响下,吉林省龙井市举行了3万多名朝鲜族各界群众参加的反日游行。在游行活动被日本帝国主义和封建军阀镇压后,广大朝鲜族人民拿起了枪杆子,与日本侵略者进行殊死斗争。1920年发生的震惊中外的风梧洞战斗和青山里战斗是力量悬殊的较量,是草鞋和军靴的战争。在这两次战斗中,大部分由农民组成的抗日队伍打败了武装到牙齿的日本正规军,歼敌1000多人,打破了日本侵略者不可战胜的神话,鼓舞了当地各民族人民抗日的士气。(《阿里郎之梦》第四集草鞋与军靴的战争)。   图为民间历史学者全正革先生在讲述朝鲜族反日七志士的故事



꿈의 아리랑을 찾는 사람들


글/김향덕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길림성 도문시 정암촌의 신범극 로인이 부르는 아리랑은 우리가 익숙히 들어오던 아리랑과는 좀 다른 맛이 난다. 한 녀성의 일생을 보여주는 “청주아리랑”은 원적지인 한국에서도 실전되였다가 정암촌의 촌민들에 의해 다시 전해지고 있다.


       ……


       “중국에 도착하면 농사를 많이 지어서 밥을 배불리 먹을수 있다더군요.…”


       “세월이 참 많이 흘렀죠. 돈 벌어서 고향땅에 간다는게 가보지도 못하고…”


       신순호와 서강숙 로인은 전쟁의 흉터인양 두망강에 쓸쓸하게 서있는 단교에 올라 지나온 이야기를 나눈다.


       ……


       “태양촌에는 218호,향수촌과 신선동촌에는 각각 80호, 이렇게 조선에서 온 이민들을 안치시킵니다. 한겨울에 소차를 몇십대 동원하여 천교령역에 나가서 이민들의 짐을 싣고 아이들을 태웁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모두 걸어서 이동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서러움에 떨면서 가야하강반을 걸었다고 합니다.……”


       길림성 룡정시문화관 전임 관장이며 민간사학자인 리광평 선생이 조금은 격앙된 어투로 조선족집단이민의 상황을 설명한다.


       ……

       컴퓨터에서 이와 같은 화면들이 수시로 뒤바뀌면서 편집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였다. 지난 4월의 어느 날, 기자는 북경시 한 작업실에서 《꿈의 아리랑》제작진 일행을 만날수 있었다.


5.摄制组在金灿灿的稻田取景.jpg

朝鲜族人民勤劳而富于创造精神,他们与兄弟民族一起,用自己的双手,把荒芜的原野改造成粮仓。他们擅长于水稻种植,创造了在寒冷地带栽培水稻的奇迹。在辽宁省桓仁县的洼泥甸子村村民委员会办公室前面有块石碑,石碑上刻着“东北水稻第一村”。解放前,朝鲜族人民来到这里,在潮水进出的滩涂上,把那连候鸟都不愿栖息的土地开垦成水田,种上了水稻。如今,这里变成了稻浪翻滚的金色海洋。(《阿里郎之梦》第三集苏醒的大地)。      图为摄制组在金灿灿的稻田取景


       《꿈의아리랑》은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에서 제작한 12부작 TV다큐멘터리이다. 작품은 우리 선조들이 심한 자연재해와 일제의 수탈에서 벗어나고 나라와 민족의 해방을 위해 중국의 동북지역에 이주하여 땅을 개간하고 새로운 생활의 터전을 건설하며 항일투쟁에 참가한 사적들을 생동하게 다루었다.


       눈물젖은 두만강,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청주아리랑,홍해탄은 왜서 이처럼 붉은가, 깨여난 땅, 개척자의 발자국, 교정의 종소리는 누굴 위해 울렸나, 장부출가 생불환, 군화와 짚신의 싸움, 형장의 이슬, 이민으로부터 공민으로……


       이처럼 작품은 감명 깊은 주제로 조선족의 이민과 개척 및 항일투쟁의 사적들을 시공간을 뛰어넘는 다채로운 화면으로 펼쳐준다.작품은 진실한 영상자료와 현지고찰 및 이민 일세대와 학자들에 대한 취재를 결합시켜 조선족 이민과 투쟁의 전반 모습을 생생하게 재생시켰다.


       “연변대학 손춘일 교수가 2009년에 백만자에 달하는 《중국조선족이민사》(한문판)를 펴냈지요.그후 손교수께서 이민사를 영상으로도 반영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저한테 연락이 왔거든요.”


       2012년말, 손춘일 교수로부터 연락을 받은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 박일선 전임 주임은 제작진을 이끌고 무작정 연변으로 향했다.그들은 연변에서 조선족 이민에 관한 사료를 찾고 생존해있는 이민들과 그들의 후손 및 학자들을 만나보았으며 항일전적지와 관련부문들을 찾아보면서 촬영준비를 꼼꼼히 해나갔다.


3.老人们在讲述亭岩村的陈年往事.jpg


4.老人们在讲述亭岩村的陈年往事.jpg

吉林省图们市亭岩村是中朝边境的一个小村,这里是典型的朝鲜族特色民居,清一色白墙灰瓦,排列十分整齐。当时延边地区也是抗日游击队的主要活动地区之一,亭岩村经历了抗日的风雨,当时日本人压迫村里的所有人到江边背石头,砌成了一米左右高的墙基。朝鲜民谣“青州阿里郎”历经70年在亭岩村传唱不衰。(《阿里郎之梦》第二集青州阿里郎)。     图为老人们在讲述亭岩村的陈年往事


       20133월《꿈의 아리랑》은 정식 촬영단계에 들어섰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2년동안 동북3성을 비롯하여 하북성과 광동성 등 지역에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제작진은 영상자료를 수집하고 현장을 화면에 담았다.


       이 작품은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에서 처음으로 제작하는 TV다큐멘터리가 아니다. 2003년에 연변텔레비죤방송국과 합작하여 반일투쟁유적지를 답사한 18부작 《혈흔》을 내놓았고 그후 해방전쟁시기 조선족군민의 업적을 다룬 10부작《영원한 기념비》를 내놓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조선족의 생존과 투쟁의 력사를 영상으로 담은 자료입니다.”박일선 선생의 말이다. 그는 이번 작품의 프로듀서를 담당하였다.


       “조선족이민 대부분이 작고했거나 고령에 처한 상황에서 이민의 력사정리작업은 아주 시급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꿈의 아리랑》의 제작은 력사 발굴의 구조적 조치로 볼수 있지요. 물론 이것이 작품을 만드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세번째로 만드는 TV다큐멘터리지만 그는 앞의 두편을 제작할 때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잊혀져가는 우리 선조들의 력사흔적을 후대들이 보고 느낄수 있는 영상기록으로 남기는것이 그의 초심이였기 때문이다.


       촬영가 모풍안(慕丰安,한족)은 이번 작품의 촬영과 감독을 맡았다. “비록 저는 박주임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조선족 이민이라는 제재를 듣고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1975년 북경영화학원의 촬영전공을 졸업한 그는 저명한 희극감독 영달(英达)의 작품 《我爱我家》, 《闲人马大姐》등을 촬영한 경험이 풍부한 감독이였다. 그러나 조선족에 대하여 전혀 료해가 없었던만큼 그가 봉착한 어려움은 불 보듯 뻔하다.


       촬영기간 그는 거의 한달에 두서너번씩 조선족집거구와 산재구를 찾았고 구독과 탐구로 조선족력사에 대해 파고 들었다.


       “손춘일 교수가 펴낸 《중국조선족이민사》를 열심히 읽었구요, 그속에서 느껴진 조선족의 내재적 감수성과 민족정신을 촬영에 도입하려고 노력했습니다.조선족의 이민은 단순한 지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한 민족의 문화와 풍속 및 민족성격의 반영입니다. 이민으로부터 공민으로 되는 조선족이민사는 시종 중국근대사와 갈라 놓을수 없다고 생각되며 그 과정에서 체현되는 견인불발의 민족정신과 교육을 중시하는 등 장점들은 우리 여러 민족들이 따라 배워야 할것입니다.”


       그는 조선족 선인들이 남긴 정신적 재부는 후대들이 반드시 계승하고 발양해야 한다고 재삼 강조했다. 이것 역시 이번 작품의 제작과 편집을 담당한 허문학 선생의 소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이번 작품제작에 참여한 것이 아주 잘된 일이라고 하면서 조선족으로서 자기 민족의 력사를 모르는만큼 큰 비애는 없을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다큐를 만들기전에는 조선족 력사를 거의 모르고 살았지요. 기껏해야 할아버지벌은 조선반도에서 건너왔다는것만 알았지, 그들이 어떻게 건너왔으며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것을 잘 몰랐습니다.” 력사를 잊는 민족은 미래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그는 젊은 세대들이 민족력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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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纪录片《阿里郎之梦》取景过程一 (1).jpg


新中国成立以后,朝鲜族人民成为我国56个民族大家庭当中的一员,他们释放出前所未有的创造力,为国家繁荣发展贡献自己的力量。(《阿里郎之梦》 第五集 从移民到公民)。    图为纪录片《阿里郎之梦》取景过程


사실 2년 넘어 촬영하면서 박일선 선생과 모풍안 감독 그리고 허문학 선생까지 불과 3명으로 팀을 이룬 《꿈의 아리랑》 제작진은 민족력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1999년부터 연변의 방방곳곳을 찾아다니며 180여명의 집단이민자를 인터뷰하고 90만자의 집단이민 구술자료를 정리해낸 조선족집단이민력사의 기록자 리광평,해마다 청명절 때 면 량세봉리진룡 등 조선족 항일명장들의 기념비를 찾아 추모활동을 벌리고 신빈현을 비롯한 료녕지역의 조선족 항일사적들을 수집정리하고 있는 신빈현문화관 연구원 전정혁. 그리고 숱한 감동적인 스토리를 들려준 조선족 이민후손들…… 그들 몸속에서 우러러나는 민족사랑과 민족적 사명감,이들은 후손들에게 수많은 정신적재부를 남겨주었다.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숨가뿐 “아리랑 고개”를 넘어다니며 “꿈”을 찾던 광경은 이젠 영상자료와 구술기록으로 남아있을 뿐이다.그러나그들을 기리고 그들의 강인한 정신을 이어받아 끈질기고 굳세게 살아나가려는 아리랑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분명히 신순호와 서강숙 로인은 부모님을 따라 두만강을 건너던 광경을 그리며 삶의 새 희망을 꿈꾼다.


编辑:徐贞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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